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📉 자진상폐 보고서: "개미는 어쩌라고"… 제 발로 증시 떠나는 기업들

2025. 8. 24. 12:09

출처: 연합뉴스

 

🏦 상장, 어렵게 들어와 쉽게 나가는 기업들

기업이 증시에 상장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습니다. 공시 의무를 충족하고, 재무 투명성을 검증받으며, 막대한 상장 비용을 치른 끝에야 증시 문을 열 수 있습니다. 그런데 최근 들어 이 힘든 과정을 거쳐 입성한 기업들이 스스로 상장폐지를 선택하며 시장을 떠나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.

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(2025년) 자진상폐 목적의 공개매수에 나선 기업은 벌써 5곳. 이는 최근 몇 년 추세와 비교해도 빠른 증가세입니다. 2022년 3곳, 2023년 4곳, 2024년 6곳에서 올해는 벌써 5곳이 나왔으니 연말까지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.

 
출처: 더스쿠프

📌 왜 떠나는가? 기업들의 속내

대부분의 기업들은 "의사결정 구조 효율화"와 "기업가치 제고"를 이유로 내세웁니다. 외부 주주들의 간섭 없이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장기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논리죠.

하지만 실제 시장의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.

  • 규제 강화와 배당 압박: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상법 개정안이 추진되면서, 물적분할 시 주주권 강화, 공시 의무 확대 등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강화되었습니다. 이는 대주주 입장에선 ‘부담’으로 작용합니다.
  • 행동주의 펀드 압박: 최근 몇 년간 소액주주와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가 커지면서, 배당 확대·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강해진 것도 기업들이 증시를 떠나는 배경입니다.
  • 사모펀드의 계산된 움직임: 특히 사모펀드(PE)가 대주주인 기업들은 비상장 상태가 기업가치 관리나 엑시트(투자금 회수)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립니다. 시장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고 지분 매각·합병(M&A)을 자유롭게 추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.

 

출처: 더스쿠프

🏗️ 대표 사례들

  • 커넥티드웨이브(다나와 운영사): MBK파트너스가 지분 58% 확보 후 추가 공개매수를 통해 95% 이상 지분을 확보, 2024년 자진상폐.
  • 쌍용E&C: 1975년 상장한 후 49년 만에 증시 퇴장. 한앤컴퍼니가 공개매수와 지분 이전을 통해 완전 자회사로 전환.
  • 코오롱모빌리티그룹: 2023년 재상장 후 2년 8개월 만에 자진상폐 결정, 대기업 계열사까지 확대되는 자진상폐 흐름을 보여줌.

 

 

⚖️ 엇갈린 시각: ‘시장 정화 vs 소액주주 희생’

  1. 긍정론
    • 한국 증시의 중복상장 문제 해결 계기.
    • 현재 국내 상장사 수는 2478개로 미국·일본 대비 증가율이 월등히 높음. 그러나 평균 시총은 미·일·대만의 절반에도 못 미침.
    • 계열사 쪼개기 상장(물적분할 IPO) 남발로 ‘종목은 많지만 주가 성장은 미미한 시장’이 되었는데, 자진상폐는 이런 구조를 정리할 기회라는 주장.
  2. 부정론
    • 성장성이 높은 알짜 기업까지 증시를 떠나면서 소액주주 피해가 불가피.
    • 공개매수 가격이 대체로 최근 주가 평균에 맞춰져 있어, 내재가치와 미래 성장성 반영이 부족.
    • “대주주와 PE는 막대한 상장 프리미엄을 누리고, 손실은 개미가 떠안는다”는 비판이 거세짐.
 
출처: 더스쿠프

🚨 소액주주 보호 장치, 왜 필요한가

현재 제도하에선 자진상폐가 결정되면 소액주주는 사실상 대주주의 제시 가격에 주식을 매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. 반대 주주에게도 ‘공정한 매수가격’을 보장하는 매수청구권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.

  •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부원장:
  • "기업은 정보 비대칭성을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점에 상폐를 결정할 수 있다. 반면 소액주주는 가격 선택권이 없다. 제도 보완이 절실하다."
  • 정우철 블랙펄자산운용 대표:
  • "공개매수 가격이 낮아도 투자자는 대안이 없다. 상폐에 반대하는 주주도 합리적 가격으로 매도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."

 

 

🔮 결론: "코스피 5000 시대"와 상충하는 자진상폐

정부는 ‘코스피 5000 시대’를 외치며 증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습니다. 하지만 한편에선 대기업과 알짜 기업까지 줄줄이 증시를 떠나고 있습니다. 이는 장기적으로 시장 신뢰 저하 → 외국인 투자자 이탈 → 코스피 고지 도달의 제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.

따라서 지금 필요한 건 단순히 상장사 수를 늘리는 양적 성장 전략이 아니라, 상장사 퀄리티를 높이고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하는 제도 개혁입니다.

  • 자진상폐 공개매수 가격 규제
  • 소액주주 매수청구권 부여
  •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책임 경영 강화

이 세 가지가 병행되지 않는다면, 앞으로도 ‘개미는 어쩌라고’라는 탄식 속에 증시를 떠나는 기업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.